
민석이 윤희의 집 근처를 기웃거리다 그만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고
큰 길로 나와서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바로 앞쪽에서 윤희 아버지가
민석을 바라보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민석은 느낌으로 자신을 먼저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불길한 예감은 가끔씩은 섬뜩할 만큼 들어맞을 때가
있는데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윤희 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난감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민석의 등 뒤를 써늘하게 만들고 있었다.
"자네 오랜만이네"
"아, 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아는 척을 하는 윤희 아버지에게 민석은 어색하지만 깍듯이 인사를 했다.
"그러지 않아도 자네를 한 번 봤으면 했는데... 잠시 얘기 좀 하지"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윤희 아버지는 마침 20m 거리에 있는 동네의 작은 공원으로
걸어 가셨고 민석은 마치 나쁜 짓 하다 들킨 아이 같은 기분으로
그 뒤를 따라 갔다.
사람이 없는 공원 한쪽으로 두 사람은 잠시 멈춰 섰다.
" 음... 그래, 내가 이 말을 꼭 해야 될 것 같아서 말하겠네,
그래야 자네도 더 이상 힘들게 우리 집에 오지 않을 것 같고, 좀 걱정되는 것도 있어서..."
윤희 아버지는 민석을 정면으로 보면서 별 망설임 없이 말을 이어갔다.
" 윤희가 죽었다네, 경찰에서 연락이 와서 우리도 알게 됐고,
자살을 한 것으로 조사 결과도 나왔고, 윤희 오빠는 자네를 보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하니 더 이상 우리 집에는 찾아오지 말고"
민석은 순간 세상이 정지 된 듯 멍한 채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얼마나 오래 서 있었는지 감각도 없었다. 윤희 아버지는 이미 가버린 뒤였고
어떻게 헤어졌는지 인사는 제대로 했는지, 내딛는 발걸음이 20대 중반에 죽겠다고
수면제를 모아서 50알을 삼킨 적이 있었는데 술을 너무 많이 먹은 탓인지
새벽에 구토를 한 후에 거리를 걸었을 때 마치 스펀지를 밟는듯한
땅바닥의 느낌, 그런 구름에 떠 있는 그때의 느낌과 똑같았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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