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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좋은 시

사랑할 자격 없는 남자. 세번째

by 알포아 2024. 7. 8.

 

 

민석이 윤희의 집 근처를 기웃거리다 그만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고

​큰 길로 나와서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바로 앞쪽에서 윤희 아버지가

​민석을 바라보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민석은 느낌으로 자신을 먼저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불길한 예감은 가끔씩은 섬뜩할 만큼 들어맞을 때가

​있는데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윤희 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난감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민석의 등 뒤를 써늘하게 만들고 있었다.

​"자네 오랜만이네"

​"아, 네,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아는 척을 하는 윤희 아버지에게 민석은 어색하지만 깍듯이 인사를 했다.

​"그러지 않아도 자네를 한 번 봤으면 했는데... 잠시 얘기 좀 하지"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윤희 아버지는 마침 20m 거리에 있는 동네의 작은 공원으로

​걸어 가셨고 민석은 마치 나쁜 짓 하다 들킨 아이 같은 기분으로

​그 뒤를 따라 갔다.



​사람이 없는 공원 한쪽으로 두 사람은 잠시 멈춰 섰다.

​" 음... 그래, 내가 이 말을 꼭 해야 될 것 같아서 말하겠네, 

​그래야 자네도 더 이상 힘들게 우리 집에 오지 않을 것 같고, 좀 걱정되는 것도 있어서..."

​윤희 아버지는 민석을 정면으로 보면서 별 망설임 없이 말을 이어갔다.

​" 윤희가 죽었다네, 경찰에서 연락이 와서 우리도 알게 됐고,

​자살을 한 것으로 조사 결과도 나왔고, 윤희 오빠는 자네를 보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하니 더 이상 우리 집에는 찾아오지 말고"

 

 

 

​민석은 순간 세상이 정지 된 듯 멍한 채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얼마나 오래 서 있었는지 감각도 없었다. 윤희 아버지는 이미 가버린 뒤였고

​어떻게 헤어졌는지 인사는 제대로 했는지, 내딛는 발걸음이 20대 중반에 죽겠다고

​수면제를 모아서 50알을 삼킨 적이 있었는데 술을 너무 많이 먹은 탓인지

​새벽에 구토를 한 후에 거리를 걸었을 때 마치 스펀지를 밟는듯한

​땅바닥의 느낌, 그런 구름에 떠 있는 그때의 느낌과 똑같았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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