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위로일까 슬픔일까?
나에게 음악은 위로이며 슬픔이 되기도 한다.
음악으로 인해 한 없이 깊은 슬픔에
빠져 들기도 하며
음악을 들으므로 끝없는 환희에 젖어
세상이 온통 내 것 같았던 행복한 느낌,
쇼팽의 즉흥 환상곡은 나에겐 그런 곡이었다.
Chopin * Fantaisie Impromptu, Op. 66 No.4 연주(Rubinstein) No.4
쇼팽은 즉흥곡 4개를 작곡했다.
쇼팽이 즉흥환상곡 제4번을 너무나 아낀 나머지 출판을 하지 않다가,
사후에 세상에 알려진 곡으로도 아주 유명하다.
그러나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1835년 금요일 파리에서..." "데스테부인을 위해 작곡.."
쇼팽의 사후에 발견된 노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고 하는데
1835년이면 쇼팽의 나이 24세 때 무렵, 처음 이곡은 '데스테'부인을 위해
작곡'했던 것이 확실하지만 쇼팽이 이곡을 살아생전 발표하지 않은 것은
'데스테'부인에게 곡이 팔렸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론이 있긴 하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쇼팽이 즉흥환상곡을 작곡할 무렵엔
George Sand.1804.7.1∼1876.6.8 (쇼팽의 연인)
여류작가인 '조르주 상드'와 사랑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즉흥환상곡뿐 아니라 그를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리게 한
수많은 서정적이며 낭만적인 아름다운 곡들은 그의 연인인 '조르드 상드'가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쇼팽 (Chopin 폴란드 태생. 1810–1849)
평생을 병약한 몸으로 살았던 쇼팽이 그나마 많은 곡들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사랑했고 또한 그를 사랑하며 후원해 주었던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쇼팽을 연구한 이들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사랑했던 '조르드 상드'와의 사랑은 끝내 이루지는 못했다고.
어쨌든 즉흥환상곡 4번은 네 개의 환상곡 중 가장 먼저 만들어졌으면서도 가장 늦게
쇼팽의 사후에 발표된 것이긴 한데 왜 그랬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고
당사자인 '쇼팽'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쇼팽'은 1810년 2월 22일 폴란드의 바르샤바 근교 '제라조바 노라'에서
프랑스인 아버지와 폴란드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으며 폴란드를
자신의 조국이라 부르며 러시아로 인해 폴란드가 어려웠을 때마다
연주회로 번 돈의 대부분을 조국 폴란드로 보냈던 애국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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